인공지능

얼마 전에 있는 TV 대선 토론을 보던 중에 4차 산업혁명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단어 자체도 많이 나왔습니다만, ‘4차 산업혁명’이 무엇인지 저도 그렇고, 후보자들도 그렇고 도무지 잘 모르는 것 같아서 검색을 해봤습니다.

그 결과로 4차 산업혁명이 정확히 뭔지, 어떠한 개념인지는 잘모르겠지만, 어렴풋이 드는 생각은 우리는 기계와의 전쟁을 준비해야 하고, 우리의 아이들은 로봇을 파괴하는 방법을 알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4차 산업혁명을 예상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들이 있고, 그것들 중의 하나의 선두기업 또는 표준기업이 된다면 거대한 성공을 거둘 것입니다.

저도 거대한 성공을 위해서 4차 산업혁명을 구성하는 것들을 살펴봤지만, 유독 인공지능에 관심이 갔습니다.

지금의 인공지능은 어렸을 적 제가 상상하던 인공지능과는 좀 다른 모습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언어를 대하는 방식에서의 어른과 아이의 차이.

어른들은 언어를 학습(Learning)하고, 아이들은 언어를 습득(Acquisition)합니다. 지금의 기계는 ‘학습’은 할 수 있어도, ‘습득’은 할 수 없습니다.

아직은 어려운 일인 것 같지만, 아이들처럼 익힐 수 있는 인공지능이 나온다면, 정말로 인간들의 세상에서 많은 것들이 바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어른들의 두뇌를 지닌 인공지능에 위협받지 않습니다.

잘 몰라서 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죠. 인공지능 전문가들이 보면 비웃을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글을 발행하기 전에 ‘맞춤법검사’ 사이트에서 맞춤법을 검사한 후에 발행을 합니다.

미리 작성해둔 글을 복사해서 맞춤법검사 사이트에 붙여넣고, ‘검사하기’ 버튼을 누릅니다.

그러면 빨간색으로 맞춤법이 틀린 부분이 표시되고, 그것을 보고 수정합니다.

어쩌면 미래에는 우리가 판사의 판결이 필요한 상황을 이것과 같은 방식으로 풀어나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타이핑하면, 맞춤법을 검사하듯이 위법한 사실들은 빨간색으로 체크되고, 그것을 토대로 형량이나 벌금을 산출하고, 결과가 표시될 수도 있습니다.

무섭네요..

그렇지만 저는 의뢰인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변호하는 기계의 모습을 상상하기 힘듭니다.

저는 TV토론회에 나와서 꿈을 이야기하고, 실현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공약들에 관해서 토론하는 기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지금과 같이 발전하는 인공지능의 모습에서 ‘변덕’, ‘번뜩임’과 같은 것들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는 일은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다이어트 중인데도 마카롱을 먹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공공장소인 엘리베이터임에도 불구하고, 나 혼자 있다는 이유로 시원하게 방귀를 뀌어버리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쫄지않아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기계는 전에 있던 것들을 더 좋게 만들 수는 있어도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지는 못합니다.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는 일은 사람이 하는 일입니다.

데이터를 토대로 사람들의 취향과 인식을 이용하는 일은 기계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의 취향과 인식을 바꾸는 일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게 되면, 인공지능이 사람들의 패턴을 분석해서, 사람들이 필요로하는 서비스를 정확하게 만들어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런 것들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제가 만드는 서비스에 저의 취향과 성향이 반영되는 것에 주저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인공지능이 하지 못하는,

우리의 취향과 성향을 반영된 멋진 서비스를 만들고,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일을 하고 싶기때문에 인공지능이 두렵지 않습니다.

octocolumn에 관한 제 상상이 실현된다면, 인공지능은 우리 플랫폼 안에 있는 ’변덕’과 ‘번뜩임’ 등을 가진 Crazy Ones에게 질려서 오류가 발생할 것입니다.

내일을 위한 시간

멀리서 보는 야경 속 층층마다 불 켜진 건물의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인간의 쓸쓸한 풍경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멋진 야경을 만들기 위해서 그 시간까지 열심히 일하는 것은 당연히 아닐 테고, 오늘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오늘 밤에도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말은 낭만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당연한 것들을 누리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생각에 쓸쓸한 말로 들리기도 합니다.

어느 누군가에게는 저녁이 있는 삶은 너무도 당연해서 새삼스레 말할 필요도 없지만, 어느 누군가는 집에 가서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날을 행복으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산다면, 오늘을 위해서는 어제 살았어야 했을까요?

어제도 내일의 내일을 위해서 산 것은 아닐까요?

이미 출간되어있는 도서들은 제외하고, 최근에 출간되는 도서들의 상당수는 ‘자기개발서’, ‘미래예측서’ 등과 같은 내일을 위한 책들입니다.

인터넷에서 발행되고 있는 글들의 상당수도 내일을 위한 글들입니다.

사람들의 불안한 미래가 반영된 현상일까요.

참담한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밝은 미래를 꿈꿔야 하는 걸까요.

내일을 위해서 어제와 오늘을 희생하는 것은 물론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쓰디쓴 시절을 보내고, 달콤한 과실을 취하는 현대사회의 성공한 영웅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몇 년 동안 힘들게,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당연한 미덕이라고 생각되는 풍조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런 사례들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만큼, ‘그때는 진짜 원 없이 놀았었지~.’라는 말도 부끄럽지 않게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난 10년간 작곡가로 살면서 성공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재미있었던 시절이었고 치열하게 살았던지라, 후회는 없습니다.

고시 공부를 하는 와중에도 하루쯤은 완벽하게 노는 날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마음 한켠에 떠오르는 ’이래도 되나..’라는 불안감 따위는 깨끗하게 밀어버리고 놀아야겠지요. 미래를 위해 오늘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오늘을 위해서 희생되는 미래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과거만큼 오늘도, 오늘만큼 미래도, 미래만큼 과거도 각각 똑같이 중요합니다. 

일부 글쓰기 플랫폼은 일반적인 블로그들과는 다루는 분야가 꽤 다릅니다.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들어놓지도 않았건만, ‘글쓰기 플랫폼’에서는 자기 계발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의 비중이 큽니다.

일반적인 블로그들도 물론 그런 글들이 많기는 합니다만, 그 비율을 비교해봤을 때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문화가 다르다고 해야 할까요.. 분위기가 다르다고 해야 할까요.. 흠.. 말로 할 수 없는 ‘그게’ 다릅니다.

작가는 ‘권력’이나, ‘자격’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그것이 존중받는 문화를 되찾아야 합니다.

오늘 저녁 친구들과 먹었던 맛있는 ‘초밥집’에 관한 글도, ‘Apple의 WWDC 행사’에 관한 글과 같이 다뤄져야 합니다.

‘2017년 디자인 트렌드’를 다루는 것과 ‘1990년대 유행했던 그때 그 시절 패션’에 관한 글이 아무런 위화감 없이 조화를 이루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습니다.

octocolumn에서 읽을 수 있는 글은 내일을 위한 오늘뿐만 아니라 오늘로서의 오늘도 의미가 있게 하는 글이었으면 합니다.

10년 후의 미래도 중요하지만, 이번 여름휴가를 어디로 떠날지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예술가여, 무엇이 두려운가?

아이유의 ‘Palette’는 좋은 곡입니다. 뮤직비디오까지도요. 🙂

저는 요즘에 그 곡을 들을 때면, 다시 작곡을 하고 싶은 마음이 스물스물 떠오릅니다.

현실적인 어려움. 그리고 재능의 한계로 인해 긴 작곡가 생활을 포기했고, 지금은 완전히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 형성되었던 ‘예술가’로서의 태도는 다행히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런 줄 알았습니다.

훌륭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도용한다.

라는 Picasso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제가 굳이 Picasso의 말까지 거론한 이유는, 저의 한가지 반성에 대한 이야기 때문입니다.

지금의 octocolumn의 베타버전과 앞으로 출시될 octocolumn의 정식 버전까지 어떠한 서비스들과 일정 부분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얼핏 본다면,

‘에이, 저거 이미 있는 거잖아.’ 내지는 ‘Copycat이네.’와 같은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것들을 굉장히 의식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다른 방식으로 보여지기를 원했습니다. font, 색상을 선택함에 있어서도 최대한 비슷해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새로운 방식을 찾아내려고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생각은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그러던 중 지금은 우리와 함께하지 않고 있지만, 디자이너 Jamie님이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쓰는 색, 많이 쓰는 방식에는 다 이유가 있다.

라는 말이었습니다.

다른 서비스들이 많이 하는 방식이라는 이유로, 좋은 것들을 억지로 외면했던 저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파란색을 쓰지 말아야 하는 적절한 이유를 말하기보다는 ‘Facebook’, ‘Linked in’ 같은 서비스들이 쓰니까 싫다는 말을 해왔던 제가 굉장히 부끄러워졌습니다.

아이콘의 모양들이 비슷한 점, 컨텐츠의 배치가 비슷한 점 등과 같은 것에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에서 타당한 이유 없이 억지로 벗어나려고 한다면, 웹사이트가 아니라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기린 그림처럼 다른 사람은 알아볼 수 없는 것이 되겠지요.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많은 설명이 필요한 서비스라면, 사람들은 많이 이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들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라면,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우리와 비슷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아이유와 Jamie의 도움으로 저는 예술가로서의 태도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것을 생각해냈지만, 이미 세상에 있었던 것이라고 뒤늦게 알아채더라도 서슴없이 적용하겠습니다.

이미 많은 곳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이라도, 타당한 이유와 의미가 있는 것이라면 망설이지 않고 사용하겠습니다.

IT 경력이 짧은 예술가에게는 ‘반드시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내야 한다.’라던가 ‘혁신적인 IT 서비스를 만들어야 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좀 힘든 일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 이런 강박을 가진 상태로는 누구에게도 쉽지 않습니다. 

이미 있는 서비스잖아?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와 같은 질문에는 투자자들과 사용자들에게 CEO로서 당연히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더이상 이런 질문과 비평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IT 서비스를 만들고 있는 예술가니까요.

-We can make a difference.-

Respons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