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ctocolumn story가 드디어10번째편을 발행합니다.

그 사이에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이 발전했습니다.

제 글쓰기 실력도 조금이나마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시리즈를 쓰기 잘한 것 같습니다.

ocs20을 발행할 때 쯤이면, 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지 상상만해도 두근두근 합니다. 🙂

경쟁

우리는 모두 경쟁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학교나 어린이집에 있는 아이들조차도 어떠한 형태로든 경쟁을 합니다.

하다못해 명절에 기차표를 예매한다던가, 스타벅스에서 예쁜 머그를 사려고 할 때도 어쩔 수 없는 경쟁을 해야 합니다.

비지니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구에는 인구가 한정되어있고, 한사람이 수십 개의 SNS를 이용할 수는 없습니다.

많아야 5개 정도일까요? SNS 간에 연동을 한다고 해도 하루종일 SNS만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생각해보니까 5개도 너무 많은 것 같군요.. ;; 그렇지만 SNS 서비스의 개수는 셀 수도 없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을 때도 카메라 app을 몇 개씩 쓸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자주 사용하는 한두개의 app이 있을 테고, 그것에 만족한다면 다른 카메라 app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경쟁을 하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경쟁이 있는 곳에 이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높은 임대료를 지불하고서라도 굳이 경리단길에 상점을 내려고 하는 이유는, 거기에는 사람들이 많고, 그 많은 사람들 중 일부를 내 손님으로 만들 수 있다면 좋은 수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높은 경쟁률에도 불구하고 굳이 기를 쓰고 공부해서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이유는, 안정되고 꾸준히 높은 수입을 얻을 수 있으며 좋은 복지를 누릴 수 있다는 점 때문이겠지요.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면야, 분명 그 과실은 달콤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조금 시각을 달리 해보겠습니다.

경쟁이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뒤처지는 누군가를 만들게 됩니다.

1등부터 몇 등까지 잘라서 승자로 인정해주는 문화는 사회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무시해버립니다.

ABBA가 1980년에 이야기했던 ’The winner takes it all’은 1980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도 적용되어 왔었고, 그 이후에도 여전히 적용될 말입니다.

그리고 그 ‘it’이 실제로는 보기보다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사字’직업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입이 좋지 않은 사람을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마시는 ‘3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파는 카페가 어느 순간 파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남들이 좋다고 하니까, 저쪽에 사람들이 몰려있으니까 그냥 뒤를 이어서 줄을 서고, 한 칸이라도 앞으로 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조금 서글퍼집니다.

그리고 이런 모든 것들을 알면서도 경쟁에 참여해야하는 우리들은, 꿈의 날개를 이미 포로로 잡혀버린 우리들은, 억지로라도 서로를 웃게 하며 줄을 서고 있습니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동물로서의 본능 중 하나는 우리는 경쟁에 중독되어있고, 다른 사람과 똑같은 걸 하면 안심한다는 점입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내 옆의 누군가도 하고 있으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저 열심히 노오력해서 다른 사람보다 잘하기만 하면 winner가 될 것이고, 많은 것들을 가져갈 것이라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남들과 다른 일을 하면 손가락질을 받을까 봐, 혹여나 실제로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이 없어도 잘못된 일을 하는 건 아닐까 봐 왠지 모르게 스스로 불안해합니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도, 사회 시스템의 문제도 아닌, 인간이 동물로서 당연히 가지고 있는 본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이 망할 놈의 본능은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고, 사회의 도움을 받아서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떠한 노력으로 극복해낼지, 어떤 대통령이 우리를 인간으로서 성숙할 수 있도록 도와줄지 침착하게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영향력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믿을 수는 없습니다.

잘 모르는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오히려 좀 이상합니다. 그래서 광고에는 유명한 사람들이 나오나 봅니다.

우리가 어떠한 선택을 할 때 100% 자신의 의사로 선택하지는 않습니다.

친구의 말을 듣거나, 조금 전에 내린 지하철에 붙어있던 광고가 생각나거나, 점원의 말을 듣는 등 어떠한 형태로라도 다른 것의 영향을 받습니다.

집에서 맥주 한잔하면서 가볍게 볼 영화 한 편을 고르더라도, 소중한 내 2시간을 아끼려고 영화평론가의 평을 보거나 다른 사람들이 남긴 별점을 살펴봅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가정을 해보죠. 🙂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엔딩크레딧을 끝까지 보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그렇지만 영화평론가 이동진 씨가 어떤 영화에 대한 영화평으로 ’역대 최고의 엔딩크레딧’이라는 평을 남겼다고 칩시다.

그 평론을 보고 영화관에 들어간 사람들이 엔딩크레딧을 끝까지 볼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예를 들자면,

한국인이 사랑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octocolumn에 글을 올렸다고 칩시다.(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보고 있나, 하루키상..)

그 소식이 알려지게 되면, 사람들은 octocolumn에 몰려들겠죠.

우리가 어떠한 비전과 미션을 가지고 움직이는지, 우리의 플랫폼은 어떠한 일을 하는지보다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글을 올린 곳’이라는 스티커가 엄청난 효과를 발휘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영향력이라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들이 돈을 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속성은 없습니다. 한순간에 몰려들고 빠져나가죠. 마치 포켓몬GO처럼 말입니다.

앞서 말한 영화 이외의 다른 영화 엔딩크레딧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하루키가

새로운 글을 쓰지 않는다면 그 플랫폼은 외면당할 것입니다.

물론 위의 방법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것들을 처음 접하게 하고, 그것에게 사람들을 계속 붙잡아 놓을만한 매력이 있다면 매우 효과적인 마케팅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이런 식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별 도움이 안됩니다.

어떠한 이벤트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하고 매력적인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특정 인물이나 사건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가능하면 영향력이 적게 발휘되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습니다.

좋은 일은 좋은 대로 이용하고, 나쁜 일은 나쁜 대로 흘려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특정 사용자의 영향력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좋은 글을 평가하는 방법을 만들어야겠습니다.

특정한 ‘사람’이 발행한 글이 좋은 글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좋은 ‘글’이 좋게 평가받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싶습니다.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지만, 극단적으로 말하면 글을 발행한 사람의 인사가 ’Hi, I am Steve.’가 아니라 ‘Hi, I am somebody.’로 보여지게끔 만들고 싶습니다.

지금의 octocolumn은 적당한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고, 새로운 웹사이트에서도 어떠한 방법을 써서 그것을 해결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에 대한 해결책 없이 정식런칭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Gather ye rose-buds

너희들이 할 수 있을 때, 장미꽃 봉오리를 모아라.
시간은 여전히 달아나고 있으니.
오늘 웃고 있는 이 꽃이 내일이면 죽어가리니.

Robert Herrick의 시의 한 구절입니다.

저에게는 ‘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해라.’, ‘수줍어 말고 시간을 잘 활용해라.’라는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2016년 6월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그냥 넘기지 않았고, 수줍지만 여기까지 밀어붙였습니다.

그때 시작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소중한 인연들과 만날 일은 아마 없었을 테지요.

아마도 이 인연들과는 평생에 한 번 스쳐 지나가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겠지요.

그 시절이 지나 그것이 끝난 후에는

나쁘고 더 나쁜, 최악의 시간들이 계속 찾아 올 것이니

좋은 시간을 허비하면 영원히 지체할 수 있으니

저는 할 수 있을 때, 장미꽃 봉오리를 모았습니다.

octocolumn을 만들어가는 장미꽃 봉오리들은 일단 예쁩니다. 그리고 향기롭습니다.

그렇다고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될게, 날카로운 가시가 있어서 잘못 건들게 되면 찔릴 수도 있습니다. 🙁

미국에서, 서울에서, 대만에서, 대구에서, 그리고 다시 서울에서 인연을 맺은 꽃봉오리들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정성스럽게 모은 장미꽃 봉오리들을 ‘주식회사 옥토칼럼’이라는 화분에 담았습니다. 🙂

으하하하.

화분을 만든다는 게 간단해 보이지만, 막상 해보니 쉽지 않더군요.

게다가 그 꽃 봉오리들은 ‘꿈’, ‘생계’, ‘가족’ 등의 꽃잎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 무게가 엄청나게 무겁습니다.

어쨌거나 화분에 조심스럽게 담았습니다. 대단히 풍성하거나 뛰어나게 아름다운 화분은 아니지만, 아무런 인연도 없는 꽃봉오리들이 같은 화분 안에 있다는 것은 신비로운 일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겠지요.

그리고 작은 화분이지만 아직 몇개의 장미꽃 봉오리는 더 담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글을 읽을 사람이 몇명이 될지 예상할 수가 없고, 추후에라도 몇명이 읽었는지 굳이 파악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에게 다시 한번 이야기합니다.

자기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망설여지거나, 다른 누군가가 의식되어 수줍은 나머지 하고 싶은 일을 시도할 수 없다면 귀를 열고 잘 들으세요.

너희들이 할 수 있을 때, 장미꽃 봉오리를 모아라.
시간은 여전히 달아나고 있으니.
오늘 웃고 있는 이 꽃이 내일이면 죽어가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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